
경기 북부의 주요 도시 동두천은 수도권의 명산으로 꼽히는 소요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자연 친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한미 문화가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단순히 소도시라 부르기에는 다채롭고 알찬 매력을 품고 있다. '동네 한 바퀴' 349회는 경기도 동두천으로 떠난다.

▶ 철로변 ‘메타세쿼이아길’ & 동두천 실버 태권도 단원들과의 만남

▶ 변치 않는 맛과 정성 - 모자의 70년 전통 평양냉면
동두천을 대표하는 노포 중 냉면으로 입소문 난 식당이 있다. 70여 년 세월을 한자리에서 지킨 평양냉면집이다. 실향민이던 1대 사장님을 거쳐, 1대 사장님의 자녀인 2대 사장님이 운영하던 시절 직원으로 일했던 윤혜자 씨가 현재 사장님이 됐다. 가족에게 물려받은 식당은 아니지만 1대 사장님이 만들던 방식에서 단 한 가지도 달라진 게 없다는 평양식 냉면은 동치미가 맛의 핵심이다. 매년 어마어마한 양의 무를 손질해 직접 동치미를 담그고, 그 국물을 냉면 육수로 쓰고 동치미를 얇게 썰어 고명으로 올린다. 직접 반죽해 뽑는 메밀면과 함께 어우러지면 심심하지만 깊은 감칠맛이 일품이라고. 15년 전만 해도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식당이었으나, 남편이 패혈증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지용 씨가 하던 일 그만두고 어머니 곁으로 왔다. 어깨 너머 하나 둘 배운 실력이, 이젠 어머니 혜자 씨가 물려줘도 걱정이 없을 만큼 수제자가 됐다는데. 냉면만큼은 동두천 제일의 맛이라 자부하고, 그래서 더 소중히 지켜가겠다는 모자의 식당을 찾아간다.

▶ 슈퍼히어로도 부럽지 않다 – 대형 한지등 공예가의 작품 세계
동두천 보산동에는 문화예술의 거리로 활성화하고자 만든 공방 거리가 있다. 그중 한 공방 간판에는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매달려 있다. 그뿐인가, 안으로 들어가면 크기부터 압도적인 다양한 작품들이 반긴다. 알루미늄 철사와 찢어지지 않는 코팅 한지를 이용해 만든 한지등 공예품을 만든 이는 최대성 씨다. 과거, 사업가로 부족한 것 없던 시절을 보냈으나, 그 사업이 부도가 나 빚더미에 앉게 되자 가장으로서 뭐든 해야 했다. 일용직 현장을 전전하던 중 우연히 등공예 작품을 만나게 됐고,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하도 재미있어 한 달이면 35일을 일했다고 말할 정도로 한지등 공예 작업에 푹 빠졌다.

▶ 한국을 사랑한 페루人, 기셀리 사장님의 타코집
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미군 기지가 주둔하며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가 자연스레 어우러진 동네 보산동. 미군 부대가 하나둘 철수하며 거리의 활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상인들로 동두천 특유의 개성 있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 보산동 미군 부대 바로 앞에서 4년째 타코 가게를 운영 중인 페루에서 온 기셀리 씨. 15년 전 관광으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아들까지 얻었지만, 남편과는 헤어지고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파트 청소, 식당 보조로 일하며 돈을 벌어 지금의 타코 가게를 연 당찬 여사장님이다. 외국인이 많은 동네다 보니 메뉴는 멕시코 음식이지만, 음식 맛이 입소문 나면서 찾아오는 한국인 손님들을 위해 양배추를 듬뿍 넣는 센스까지 갖춘 작은 가게. 기셀리 씨에게는 한국 국적을 가진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일터이다. 손맛 좋고 성격도 싹싹해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바쁜 일상으로 고향 페루에는 늘 마음으로만 가게 된다는 기셀리 씨. 고향 식구들을 사진으로 만나며 오늘도 한국 땅에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기셀리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커피 오마카세’ 바리스타 김민호 씨의 향긋한 인생
커피로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는 일명 ‘커피 오마카세’ 카페가 있다. 동두천 토박이인 김민호 씨가 운영하는 카페다. 원두를 직접 볶아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커피인데, 다른 집에선 보기 힘든 숭늉 커피, 핸드드립 계의 에스프레소, 커피 칵테일 등 민호 씨가 개발한 다양한 커피를 만날 수 있다. 어려서부터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잦은 병치레로 고생했던 민호 씨는 몇 차례 대수술을 받으며 생과 사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늘 던져야 했다. 성인이 된 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지만 그마저도 아픈 몸 때문에 결국 접어야 했을 땐, 아내와 자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남편이 되지 말았어야 했나?’ 라며 자책했단다. 그맘때,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갈아 마시던 커피 한 잔에 위로를 받으며 민호 씨 인생이 달라졌다. 전국의 커피 명소를 돌고 해외 커피 명인을 찾아갔으며, 평생의 소원이지만 아픈 몸 때문에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프리카 케냐에도 다녀왔다. 모든 것이 커피 덕분이었기에 남은 인생은 커피에 걸기로 했다. 커피를 이야기하고 커피를 내릴 때 가장 행복한 미소를 띤다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본 아내는 남편의 커피 사랑을 누구보다 지원해 주는 최고의 파트너이다. 동두천의 작은 커피숍. 그곳에 가면 인생의 깨달음이 더해져 더욱 진하고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맛볼 수 있다.

▶ 수도권 최고의 단풍 명산, 소요산에서 즐기는 늦가을 나들이
1호선 전철 소요산역과 인접한 소요산은 늦가을에도 산행에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해발 560m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기암괴석이 발달해 사계절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그 소요산에 오르다 보면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수련했다는 ‘원효 폭포’와 ‘원효굴’, 그리고 108개의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원효대’까지 만날 수 있다. 동두천의 자랑인 소요산에 올라 늦가을 낭만과 함께, 설렘 가득한 초겨울 정취를 동시에 느껴본다.

▶ 흥 넘치는 백반집 – 긍정왕 사장님의 돌솥비빔밥
1호선 소요산역 바로 앞에는 사장님의 얼굴 사진이 내걸린 이색적인 백반집이 있다. 보기엔 평범한데 끼 많은 사장님이 장구도 쳐주고 민요도 불러준다는 개성 만점 식당이다. 식당 문을 연지 3년 째라는 권자현 사장님은 이곳에 오기 전, 25년 동안 남대문 시장에서 아동복 도매점을 운영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여파로 결국 도매점을 닫고, 평소 사람들에게 음식 해주기 좋아하는 장점을 살려 식당을 차렸다. 워낙 붙임성 좋고 흥이 많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이벤트 삼아 쳐주고 불러주던 장구와 민요가 이젠 식당의 시그니처가 됐다. 예순이 다 되고 시작한 식당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 한 장까지 모든 반찬은 손수 만들고 돌솥비빔밥에 넣는 고추장 양념도 직접 만들었다. 오시는 손님 모두가 맛있게 먹고, 신명 나게 돌아가는 게 사장님의 운영 철학! 그 덕에 한 번 들르면 단골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손님들. 밥도 맛있는데 사장님의 흥겨운 공연까지 볼 수 있으니 소요산 최고 맛집이라며 엄지를 들어 올린다. 입과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권자현 사장님의 백반집을 찾아간다.

▶ 전직 대학교수의 슬기로운 은퇴 생활 - 어르신들의 성지 ‘1,000원 호떡’
고물가 시대, 단돈 1,000원으로 두툼한 호떡 구워내는 한 호떡집. 소요산 산행길 다녀가는 등산객들의 배 든든히 채워주며, 소요산 찾는 어르신들의 성지가 됐다. 전직 대학교수였던 김채권 씨는 1년 전 은퇴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고민하던 중, 자신만의 작은 호떡집을 차렸다. 하지만 학생들 가르치던 교수도 호떡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얻은 각종 정보에 본인의 시행착오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지금의 호떡이 탄생했다. 남들 눈엔 그저 가성비 좋은 천 원짜리 호떡이지만, 채권 씨의 열정이 녹아난 결과물인 셈이다. 교수직을 은퇴하고 몇 평 남짓한 작은 호떡 가게를 차린다고 했을 땐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 하지만 명예와 체면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채권 씨. 이 나이에도 출근할 직장이 있고, 은퇴 후에도 여전히 할 일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채권 씨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주된 손님들이다 보니 그분들을 대하며 앞으로 마주할 자신의 노년도 준비하게 된다는데. 은퇴 후, 슬기롭게 인생 2막을 채워가는 긍정의 호떡 사나이를 만나본다.

과거의 어떤 아픔과 시련을 겪었든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비 온 뒤 더 단단해진 지금이 오히려 더 좋다는 동두천 사람들의 이야기는 12월 13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KBS 1TV '동네 한 바퀴' 349회. 오히려 더 좋다 – 경기도 동두천시 편으로 찾아간다.





